교육연극

교육과정에서의 놀이와 일 3

무비가이 2022. 3. 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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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과 놀이

 

이상에서 '능동적 작업활동'이라는 말은 놀이와 일을 동시에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흔히 놀이와 일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내적 의미에 있어서는 양자가 결코 흔히 생각하는 만큼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그와 같이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그릇된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놀이와 일은 모두 마음속에 바람직한 결과(즉, 목적)를 그리며 그 결과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료와 방법을 선정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의 차이는 주로 그것에 걸리는 시간의 길이에 있으며, 이것이 목적과 수단 사이의 관련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가에 영향을 준다. 놀이에 있어서는 관심이 보다 직접적인 것이다. 흔히 놀이는 활동 이상의 다른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하거니와, 이 말은 바로 이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말은 말 자체로는 옳지만, 만약 그것이 놀이 활동은 순간적인 것이요 거기에는 장차를 내다본다든지 무엇을 추구한다든지 하는 요소가 전연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사냥은 어른들 사이에서 아주 흔한 놀이이지만, 거기에는 미래를 예측한다든지 노리는 목표물에 따라 현재의 활동을 방향 짓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분명히 들어 있다. 만약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이 그 순간의 행동이 그 자체로서 완전하다는 뜻이라면, 이때의 활동은 순전히 '신체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는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은 아주 맹목적으로, 아마 순전히 남의 흉내를 내면서 그냥 동작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들뜬 상태에서 기력을 소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결과는 유치원의 게임 같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놀이에 들어있는 의미가 고도로 상징적인 것이어서 어른이라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아이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자신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아이들은 마치 최면걸린 사람처럼 움직여 다니든가 아니면 직접적인 흥분에 못이겨 공연히 우와좌왕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놀이에도 목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은 다음에 따라오는 행동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는 아이디어의 형태를 띤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놀이를 하는 사람은 그냥 아무것이나(즉, 순전히 신체적 동작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고 하며, 여기에는 미래를 예견하고 그 예견에 따라 현재의 반응을 조정하려는 태도가 반드시 들어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예견되는 결과라는 것은 사물에 어떤 특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이후에 할 행동 그 자체를 가리킨다. 놀이가 자유롭게 융통성을 나타내는 것은 이때문이다. 명확한 외적 결과가 요구될 경우에는 목적에 대하여 다소간 집요하게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며, 이 경향은 얻고자 하는 결과가 복잡할수록, 또 도중에 긴 조정 과정이 필요할수록 더욱 커진다. 하고자 하는 행동이 현재의 활동과 별개의 것일 때에는 그와 같이 장기적인 예견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도중에 계획을 쉽게 또 자주 변경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장난감 보트를 만들 때에는 그 한 가지 목적에 매달려야 하며 상당히 많은 행동들을 그 목적에 맞게 방향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이가 '보트 놀이'를 할 때에는 보트가 될만한 자료를 거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며 생각에 떠오르는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활동을 한다는 목적에 맞는다면, 의자, 나무토막, 나뭇잎, 쇠조각 등을 무슨 물건이라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어릴 때부터, 순전히 놀이 활동을 하는 시간과 순전히 일활동을 하는 시간이 명확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양자 사이의 구분은 강조의 차이에 불과하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들이 바라고 또 이룩하고자 하는 명확한 결과가 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참여하는 데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열렬한 관심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준다. 아이들은 '거들어 주고' 싶어한다. 아이들은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집짐승을 돌보는 등, 외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어른들의 일을 같이 하고 싶어한다. 놀이를 할 떄,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장난감과 기구를 만들고 싶어한다. 점점 성숙해짐에 따라,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 활동은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놀이는 '어리석은 장난'으로 되고, 그 장난이 습관화되면 사람을 타락시킨다. 가시적인 결과는 사람이 스스로의 힘을 의식하고 그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 필요하다. '가짜 놀음'을 가짜 놀음으로 아는 단꼐에서는 오직 상상 속에서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방안은 너무 시시해서 강력한 행동을 유발하지 못한다. 진짜로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놀이에 얼마나 심각하게 몰두해 있는 가를 알 것이다. 이러한 몰입의 태도는 이미 그것이 시시해져서 자극이 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예견되는 결과가 비교적 명확하고 장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룩하는 데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 놀이는 일로 바뀐다. 놀이와 마찬가지로, 일은 유목목적인 활동이다. 일이 놀이와 다른 점은 활동이 외적 겨로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기 위하여 더 긴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다. 일에 있어서는 계속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더 크고, 수단을 선택하고 가다듬는 데에 지능이 더 요구된다. 이런 식의 설명을 계속하자면 목적, 관심, 사고라는 제목으로 말한 내용 전부를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일에서는 활동이 그 이상의 물질적 결과를 얻는 데에 종속된다는 이 생각이 어째서 그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조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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