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에서의 놀이와 일 2
2. 학생이 할 수 있는 일거리
이미 학교에 들어와 있는 활동을 열거하기만 해도 여기에 풍부한 교육의 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이, 마분지, 나무, 가죽, 천, 털실, 진흑과 모래, 금속 등을 재료로 하는 일이 있으며, 이 일은 도구를 써서 할 수도 있고 도구 없이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공정은 접기, 자르기, 뚫기, 자로 재기, 틀에 붓기, 틀을 만들기, 본뜨기, 가열과 냉각, 그리고 망치, 톱, 줄 등으로 하는 일 등이다. 야외 소풍, 정원 가꾸기, 요리하기, 바느질하기, 프린팅, 제본, 뜨게질, 그림 그리기, 노래하기, 연극, 이야기하기, 사회적 목적을 가진 능동적 추구로서의 읽기와 쓰기(이것은 장차 사용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단순한 연습이 아니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수없이 다양한 놀이와 게임이 있다.
교육자의 문제는 학생들에게 이런 활동을 하도록 하되, 한편으로 손재주나 기술적 효율성이 습득되고 일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나중에 쓰이게 될 때를 위하여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교육이라는 목적-다시 말하면, 지적인 결과와 사회화된 성향의 형성이라는 목적-에 종속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로, 위의 원리에 의하면 몇 가지 방식은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된다. 명확한 처방이나 지시를 따르는 활동, 또는 기성의 모델을 수정없이 재생하는 활동은 근육의 기민성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목적을 지각하고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을 요구하지도 않고 (결국 같은 말이지만) 수단을 선택하고 목적에 맞추는 일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이때까지 소위 수공훈련이라고 해 온 것들뿐만 아니라 유치원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대부분의 활동은 여기에 그 잘못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수를 저지르는 기회도 때로는 있어야 한다. 실수 그 자체가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자료와 기구를 선택하겠다는 지나친 열성은 자발성을 제한하고 판단을 최소한으로 감소시키며, 복작한 삶의 사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방법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거기서 얻은 힘이 거의 쓸모없는 것이 되도록 한다. 사실상, 아이들은 그들의 능력을 뽐내려고 하며 그들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하려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아이가 배우지 않으면 안될 교훈의 하나이다. 다른 일도 그렇듯이, 그것은 결과를 경험함으로써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 너무 복잡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엉망이 되어서 단순히 조잡한 결과를 낼 뿐만 아니라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조잡한 표준을 학습하게 될 위험이 크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학생이 적당한 시기에 자신이 서투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자극으로 삼아서 힘을 완전한 것으로 가다듬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교사의 잘못이다. 그러기까지는, 학생의 행동을 너무 미세하고 너무 면밀하게 통제된 일에 얽매어 두면서 외적인 완벽을 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창읮거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살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확성과 세부적인 마무리는 전체적인 일의 부분부분에서 학생의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 배워 나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에 대한 무의식적 불신, 그리고 그 결과로 외적 통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은 교사의 명령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아무 수공이나 처치가 가해지지 않은 원자료에 대한 공포감은 실험실이나 수공실, 프뢰벨 식의 유치원, 몬테소리의 유아의집 등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하여 이미 처치되어 있는 자료를 달라고 한다. 이러한 요청은 책으로 하는 학문적 공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능동적인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종류의 이미 처치된 자료는 학생의 작업에 실수가 없도록 하는 데에는 물론 도움이 된다. 이런 종류의 자료로 작업을 할 때, 원래 그 자료를 처치한 사람의 지능이 학생에게 흡수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자료에서 시작하여 직접 그것을 유목적적으로 조작해 볼 때 비로소 완성품에 구현된 지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이미 형성된 자료에 지나친 강조를 두면 수학적 성질을 과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력은 물체를 크기, 모양,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비율과 관계 등, 수학적 성질에 비추어 파악할 때 만족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수학적 성질은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달성되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실제로 일을 해 본 결과로 그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알게 된다. 그 목적이 더 인간적인 것일수록, 다시 말하여 그것이 일상의 경험에서 중요시되는 목적에 더 접근할수록, 그 지식은 진짜 지식이 된다. 활동의 목적이 오직 이러한 수학적 성질을 확인하는 것에 국할될 때, 거기서 얻어지는 지식은 전문적인 지식에 불과하다.